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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홀릭
[포커스]‘응답하라 1990’ H.O.T·양파·최창민…다시 보고싶은 90년대 ★들 본문
등록 : 2015-01-17 08:00
수정 : 2015-01-17 09:10
삐삐, 길보드, 펌프, 카세트 테이프, 더플코드…
1990년대를 살아온 이들에게는 친숙한 아이템들이다. 필요한 정보를 1분이면 검색할 수 있는 스마트폰처럼 빠르고 편리하진 않았지만 삐삐는 서로를 이어주는 유일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다.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이 올 때까지의 설렘은 덤이다.
TV채널이 수백개로 늘어난 요즘, 아무리 인기 있는 드라마라고 할지라도 TV를 보기 위해 일찍 귀가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또 한 명의 스타 MC가 10년 동안 한 프로그램의 마이크를 잡는 일 역시 흔치 않다. 스타는 소장이 아닌 소비의 개념으로 변화되었고, 이러한 배경으로 문명의 발달을 들 수 있다.
음악 역시 진화와 퇴보를 거듭해왔다. 명(明)이 있으면 암(暗)이 있는 법. 장르는 늘어났고 파격적인 시도 역시 마음껏 해볼 수 있어졌다. 중국과 일본 뿐만 아니라 미국,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에 한류가 뿌리를 내렸다. 음원 시장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음원 경쟁이 가능해졌고, CD 소장에서 음원 소비 시장으로 진화했다.
이는 아이돌 가수의 흐름에 따라 시장이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아이돌 가수는 한해에도 수많은 아이돌이 쏟아진다. 또 후크송 위주의 음악이 난무하고 그 사이에서의 경쟁 역시 치열하다.
음원 차트가 성공의 척도로 귀결되는 시장 속에서 양질의 음악을 만드는 게 그리 의미 있는 일이 아닌 시대가 된 것이다. 아이돌은 쏟아졌고 국내 가요 시장의 과반 이상을 그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들을 소비하는 건 주로 어린 10대 청소년들이 대부분. 그들은 스마트폰 음원서비스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음악을 듣는다. 그러다가 새로운 음악이 나오면 그 음악을 들으며 주기는 짧아졌다. 여운 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2015년이다.
◆ 자취를 감춘 90년대 스타들, 지금은 어디에
가끔은 이러한 빠른 변화 속에서 긴 여운을 곱씹을 자유가 있었던 90년대가 그립기도 하다. 이러한 대중의 마음을 시원하게 긁어준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지난해 12월 전파를 탄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이다.
90년대를 풍미한 김건모, 소찬휘, 터보, 김현정, S.E.S 등이 출연해 그 당시 무대를 완벽 재현했고, 이후 신드롬으로 이어지며 따뜻한 연말을 선사했다.
방송 이후 출연자들의 음원은 방송 기간 내내 음원차트 상위권에 자리했고, 출연자들은 인터뷰를 통해 활동의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토토가’ 출연자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생각보다 상당했다.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며 대중은 이들의 컴백을 바랐다. 이는 ‘토토가’ 시즌2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방송에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그 시절 활동하던 스타들이 어디에서 뭘하는 지에 대한 궁금증이 쏠린 것. ‘토토가’에 등장하지 않은 90년대 스타들을 추억해봤다.
◆ 90년대는 그룹 천하(天下)…H.O.T.·영턱스클럽
90년대 가장 큰 반란은 그룹 H.O.T.(문희준, 강타, 장우혁, 토니안, 이재원)가 등장한 것이었다. High five Of Teenager의 약자로 10대들의 우상이 되겠다는 팀명처럼 그들은 정말 우상이 되어 신드롬을 일으켰고, 하나의 사회현상이 될 만큼 엄청난 파급력을 지녔다.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데뷔곡 ‘전사의 후예’는 그리 빛을 보지 못했지만, 이후 사랑스러운 콘셉트의 ‘캔디’가 소위 대박이 나면서 최정상 아이돌 그룹으로 입지를 다졌다. 이후 ‘늑대와 양’ ‘전사의 후예’ ‘위아더퓨쳐(We are the future)’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성공 가두를 달렸다.
하지만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와 계약 분쟁으로 토니, 장우혁, 이재원이 탈퇴, 강타와 문희준은 SM에 잔류했지만 이후 각각 발표한 솔로앨범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심지어 문희준은 허세발언으로 대중의 비난을 듣기도 했다. 토니, 장우혁, 이재원이 결성한 그룹 JTL역시 고배를 마셔야 했다.
현재 문희준은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MC와 패널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강타는 프로듀서로 변신해 SM 소속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으며, 중국에서 솔로가수로 활동 중이다. 장우혁, 이재원 역시 가수로서 중국 등 해외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토니는 불법도박혐의로 자숙 중이다.
혼성그룹 영턱스클럽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 이주노가 양성한 그룹으로 90년대를 영턱스클럽 열풍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2000년까지 5창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정’ ‘못난이 콤플렉스’ ‘타인’ 등 다수의 히트곡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러던 중 팀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멤버 임성은이 탈퇴 후 연예계에서 은퇴했고, 2006년 연하의 사업가와 결혼해 필리핀 리조트 사업가로 변신했다. 귀여운 외모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멤버 송지나는 2008년 스노보드 국가대표 선수로 전향해 현재 홈쇼핑 회사의 마케팅 PD로 일하고 있다. 래퍼 최승민은 영브릿지엔터테인먼트의 대표로 후배 가수들을 발굴, 양성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미소년 그룹의 결성으로 여성 팬들로부터 뜨거운 인기를 얻은 그룹 디토는 당시 ‘오늘이 가기 전에’를 발표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당돌하고 직설적인 가사로 X세대를 대변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 미소년 보컬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린 멤버 오세준의 군입대로 활동을 조기에 마무리 했다.
최근 ‘토토가’를 시청했다는 오세준은 뉴스웨이에 “같은 세대로서 정말 반가웠다. 방송을 보고 우신 분들도 꽤 계실텐데, 저도 울컥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다시 그분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길 응원한다”고 전했다.
디토의 멤버 서근배는 이후 다시 학업에 전념해 법대를 졸업, 현재 철강회사를 다니고 있으며, 영태는 헤어 디자이너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서근배와 영태 모두 어엿한 아빠가 됐다.
오세준은 “예전에는 솔로 가수들도 많이 활동하고 또 장르도 다양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많이 아쉽다”고 바라보며, “요즘엔 프로듀서 겸 디제이가 되고 싶어 열심히 공부 중”이라며 “앞으로는 가수로서의 모습뿐이 아니라 디제이, 프로듀서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 트랜드 이끈 1세대 만능 엔터테이너, 최창민
1세대 만능엔터테이너 최창민은 90년대 하이틴 스타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SBS 시트콤 ‘나 어때’에서 송혜교와 호흡을 맞추며 연예계에 혜성같이 데뷔한 최창민은 이후 연기 뿐 아니라 가수, MC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당시 하이틴 잡지의 표지는 최창민의 얼굴로 도배되었고, 톱스타들만 한다는 교복모델까지 할 정도.
김승현과 호흡을 맞추며 MC로 활약하기도 했는데, 당시 통통 튀는 매력으로 여성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교복 안에 후드티를 입는 패션 코드를 생성하며 최초의 모델 출신 답게 패션 센스를 뽐내기도 했다.
이후 최창민은 가수, 연기, MC,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이후 소속사에서 앨범 투자금을 횡령해 빚을 떠안게 되며 상처를 받았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채무를 갚기 위해 막노동까지 해야했다. 2006년 영화 ‘강적’으로 재기를 노렸지만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사실상 재기하지 못했다.
최창민은 연기 레슨과 연극 연출 등을 하며 제 2의 삶을 살고 있다. 최창민은 뉴스웨이에 “행복하다”는 말로 근황을 전했다. 연극영화과에서 연기적 학문을 수행하고 연극 무대에도 오르는 등 연기 내공을 키웠다는 그는 조심스레 복귀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최창민은 “상처도 있지만, 시간을 가지면서 내공을 쌓고 있었다. 기회와 발판이 마련된다면 시도하고 싶다”고 말을 꺼내며, “배우로 활동하고 싶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 90년대 대표 디바, 박미경·양파
90년대 여성 솔로가수 최초로 댄스곡을 선보인 가수 박미경은 국내 여성 솔로 댄스가수의 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미경은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당시 음악 프로그램 1위를 몇 달간 휩쓸며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이후 댄스곡 ’이브의 경고‘로 그 인기를 이어가며 열풍을 이뤘다.
박미경은 엄정화, 김현정, 소찬희, 이효리 등이 활동할 수 있는 활로를 터준 장본인이다. 박미경은 “당시 나는 집과 방송국만 오갈 정도였다. 돈 쓸 시간도 없었다. 많을 땐 스케줄이 10개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현재 박미경은 조용히 공연을 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새 앨범을 준비 중이며 오는 3월 5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한다.
박미경은 아직도 현역에서 활동하는 1세대 가수로, 꾸준한 자기관리를 통해 앨범을 발표하며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1996년 18세 여고생 가수로 등장한 양파는 뛰어난 가창력과 더불어 우수한 성적으로 화제가 됐다. 양파는 1996년 ‘애송이의 사랑’으로 데뷔해 방송3사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3장의 앨범을 내며 총 157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외교관이 꿈이었던 양파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진학을 목표로 했지만 1998년 수능시험장에서 2교시를 마친 후 위경련으로 쓰러져 시험을 마치지 못했다.
양파는 재수를 하는 대신 가수 활동에 전념하다가 1999년 3집 ‘미싱 유’를 끝으로 9월에 돌연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그는 버클리음대에 입학하며 가요계 활동을 중단한 바 있다.
1999년 가요계 활동을 중단한 양파는 지난 2007년 ‘사랑 그게 뭔데’로 컴백한 바 있으며 현재 티아라, 이승기 앨범의 작사가로 활동하며 각종 드라마 OST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양파는 2007년 12월 14일 열린 ‘2007 골든디스크상’ 시상식에서 디스크 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MBC ‘나는 가수다3’에 유력한 출연자로 거론되며 국내 무대에 복귀할 지 여부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http://www.newsway.co.kr/news/view?tp=1&ud=2015011617023840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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